어쩐지 가서 살고 싶었던 동네. 팔판동의 골목길.
예쁘고 정갈하고 조용한 동네. 여기 우리집 있으면 좋겠다 싶었던 공간.
그리고 며칠 되지 않아 이번에는 수원에서 살고 싶은 동네를 만났다.
수원 화성 근처 행궁동. 골목을 다니는데, 어린 시절 경주 골목이 떠올랐다.
경주에서의 딱 그 느낌과 그 분위기.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또 불쑥 솟았다.
빌라다 못해 이제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건가...이게 다 내년에 이사해야 되서 생기는 감정일지도....
그리고 1년만에 같은 곳(갤러리 이마주)에서 또다시 이미경 작가님 전시회가 열렸다. 저 큰 크기의 그림을 일일이 펜으로 빗금쳐서 그리는데, 어떻게 이렇게 1년만에 또 작품을 이만큼이나 완성할 수 있는지 신기해하며 구경하러 갔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갤러리 앞에 가서 닫힌 줄 알고 당황하다가 그쪽이 아니라 다른 쪽이 입구라는 걸 생각해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들어갔다.
우리 외에 다른 관람객 1명이 있었는데, 그 분이 가시고 나자 이미경 작가님이 붓을 들고 전시된 액자마다 하얀 칠을 하고 계셨다. 뭘하고 있냐고 물으니 얼룩이 보여서 보수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문을 트게 되어, 어떻게 이 큰 그림들을 1년만에 그릴 수 있느냐 손목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작가님 손목에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내년에는 전시를 쉬고 내후년에나 할까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작년 전시도 보러 왔었고, 사실은 땡스북스에서 전시할 때부터 봤다고, 인스타 팔로우도 하고 있다고 커밍 아웃을 했다.
작가님은 너무 반가워하시며 남친이 산 도록에 낙관도 두 개나 찍어주시고, 사인해주시고, 두 분이 친한 사이냐고도 물었다. 그러다 결국 명함도 꺼내서 드리고, 뭐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밝히고, <나의 아저씨>의 박해영 작가님이 이미경 작가님 전시도 보러 오시고 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성덕이 된 기분이었지만 왜 그렇게 부끄러운지 진땀 삐질삐질흘리며 작가님이 이야기하자고 밖으로 따라나오시는데도, 인사하고 부리나케 도망치듯 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진정이 안돼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걸어서 길가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으니, 남친이 "작가님이 그렇게 수다떨고 싶어하는데 왜 도망친거냐"며 타박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효. 쑥스러워서 그랬는데....작가님은 모르시겠지? ㅠ.ㅠ 내가 쑥스러워서 말 못하고 도망가는 걸, 사람들은 거리두고 싫어한다고 착각하던데...억울하다. 하지만 다음에 만나도 나는 또 데면데면하겠지. 어쨌거나 작가님 화이팅입니다!!
이 그림 설명도 들었다. 원래 이 가게 앞에는 이 나무가 없단다.
이 앞에 어떤 나무를 심을까 궁리하며 여러 사진으로 포토샵을 다 해보고 정한다고 한다.
이 가게그림의 많은 요소들이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동안 두 편의 연극을 봤다. 대학로에서 본 연극은 <흑백다방>. 드라마 <대박부동산>에서 사기꾼 화가로 출연하신 서진원 배우님이 출연한다고 해서 <대박부동산> 작가인 언니에게 끌려가 봤다. 천장 높고, 샹들리에 달려 있고, 사방 벽의 색깔이 다르던, 후암동에 있는 줄 알았으나 대학로에 있었던 후암 극장 로비는 무척 신기했고, 우리 빼고는 다 배우 같던 관객층도 신기했다. (다들 마스크를 꼈는데도 온 몸에서, 두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던 배우 포스...어쩔...)
커피를 팔면서 심리상담을 해주는 카페에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들어온 여자. 남자와 여자 2인만이 나오는 2인극이다. 최성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오고, 나쁘지 않았는데, 약간 아쉬웠다. 좀만 더 피치를 올렸다면, 엔딩에서 큰 여운이 느껴졌을 수도 있었을텐데...그까지 올라가지 못한 느낌. 아쉽.
세종문화회관에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연극으로 봤다. 장류진 작가님 인스타에서 보고 부랴부랴 예매했다. 그냥 '일의 기쁨과 슬픔' 한 작품만 하는 거면 보러 가지 않았을텐데 단편집에 나오는 여섯개의 이야기를 엮어서 연극으로 선보인다길래 기대를 품고 보러 갔다. 특히 빛나언니 이야기 보고 싶었다. 빛나언니 이야기와 새벽의 방문자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템페레 공항, 첫 출근하는 아메리카노 이야기 등 여러 편이 엮여 있는 건 맞는데, 엮여있다기보단 그냥 따로따로 놀았다. 나라면 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단편의 주인공들로 설정해, 얼기설기 엮어보았을텐데, 원작을 존중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너무 소설과 똑같았다. 원작 작가도 이렇게까지 똑같이 하는 걸 원하지는 않았을텐데....아쉽다, 아쉬워. 내가 이 소설집을 좋아하기에 어느 파트에 뭐가 들어갔다고 알지,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내용을 이해나 했을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TV드라마에서도 케빈과 데이빗의 비중이 커서 별로였는데,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였다.